2011년 5월 3일 화요일,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나는 어떤 남편인가?
한 평생을 함께 도우면서 살기로 하였으면서, 항상 나만을 먼저 생각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남편.
언제나 아내를 제일 뒷전으로 우선 순위를 밀어 버리는 헛된 남편
아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희생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던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못난 남편.
아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나의 힘든 점을 일방통행으로 아내에게 밀어 부친 고집 불통 남편.
내가 짐이 될 것이라고 혼자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해 버리는 아기 같은 사고의 남편.
아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혼자 판단을 하고 살아가는 착각에 빠진 남편.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지만 아내에게는 사소한 부분도 짜증으로 대하는 이중인격의 남편.
내가 행동하는 것은 모두 옳고 아내가 행동하는 것은 유치하다고 판단하는 못된 남편.
이중의 잣대를 가지고 아내에게 강요를 일삼는 한심한 남편.
항상 사랑한다고 말로는 이야기를 하면서 행동은 딴판으로 행하는 몸 따로 행동 따로의 남편.
다른 사람의 아픔은 함께 아파하지만 아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면 울컥 하면서 짜증 부터 먼저내는 나쁜 남편.
아내와 나는 평등하다고 떠들면서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강압적인 남편.
나는 쥐뿔도 없지만, 아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바로 무시를 하는 허풍쟁이 남편
모두 나열을 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내가 생각해 보아도 이런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나의 아내로 불리는 당신.
너무 고마워.
그리고 너무 미안하고....... 사랑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이제야 파악을 한 뒷북 치는 남편이지만,
지금부터는 나를 알고 바꾸어 나가는 슬기로운 남편이 될께.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인 남편이..
송아지 저금통.(아가야 힘내!)-아고라("긴 터널을 나오다" 님의 글) ==================================================================================================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는데 "와 아빠다"소리와 함께 우리집 공주님들은 현관으로 달려옵니다.
의젓하고 튼튼한 첫째, 볼수록 귀엽고 애교덩어리 둘째, 세상에서 나를 제일 필요로하는 셋째...
그렇습니다. 저는 세공주의 아빠입니다.
꽤 오랫동안 글을쓰지 못했습니다.
어깨에 놓여있는게 짐이라고 여겼기에 하루하루 고단함과 피로감 뿐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을잡지 못했기에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몇일전 아이들과 가족식사를 하는데 큰아이가 송아지모양 저금통을 들고 식탁으로 옵니다.
소띠인 큰딸은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양 제가준 동전으로 제법 무거워진 저금통을 식탁위에 올려놓습니다.
토끼띠인 둘째딸도 언니따라 자기 저금통을 들고옵니다.
"세연아.. 이것도 먹어" 아이가 좋앟는 반찬을 밥숟갈에 올려주고 이런저런 예기를 하는데 큰아이가
질문을 시작 합니다.
"아빠, 이 저금통에 돈이 다 차면 어떻게?"
"음 그거 다차면 세연이가 가져"
"내가 가지면 이걸로 뭐해?"
아이의 궁금증은 나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다가옵니다.
"그럼 아프거나 주변에 어려운친구 있으면 도와줘"
아무생각없이 말하곤 반찬을 집으려는데 큰아이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그럼 나 이 저금통 세빈이 줘야겠다... 세빈이 많이 아프니까.." 큰아이가 쭈뼛거리며 말합니다.
갑자기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저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집에도 장애아가 있었던 겁니다.
셋째공주 세빈이가 태어난건 제작년 12월 14일입니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든 아내는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였고 때마침 주말에 아이들과 놀고있던 저는 집사람을
데리고 산부인과로 향했습니다. 첫째와 둘째를 모두 순산했기에 막내역시 복통이 조금있다가 괞찮아 지겠지
했는데 그날따라 집사람의 복통은 오래갔고 의사선생님께서는 입원 한시간만에 출산준비를 하였습니다.
멋모르고 병원으로 끌려간 우리집 두 공주님은 아픈엄마를 보며 더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후... 우리집에는 세번째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8개월만에 태어난 우리집 공주는 2.2kg의 작은체구였고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개월을 인규베이터에 있었던 아이가 저희 부부에게 준 선물은 이름도 생소한 "백질연화증", "신생아 무호흡증", "사시"었습니다. 신생아 무호흡증은 아이의 폐가 정상화되면서 큰 어려움이 없고, 사시역시 아이가 크면 교정술을 하여 어느정도 치료가 가능하겠지만 아이의 머리에 생긴 백질연화증은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내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제약이 따르는 질병입니다.
집사람은 오늘도 점점 굳어가는 다리를 고치고자 주변에 유명한 물리치료실과 재활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 6개월은 아이가 제대로 살아갈수나 있을지 걱정하며 조급함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중 아이는 옹알이를 하였고 다른아이들과는 비교도 되지않은 늦은 속도지만 11개월만에 뒤집기도 하였습니다. 경직으로 인해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아이는 두팔을 의지하여 배밀이를 하였고 주변에 물건하나 집어내는 데에도 얼마나 안간 힘을 쓰는지 금새 갈아입힌 내복이 흥건히 땀에 베어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힘든 배밀이를 하며 또다시 4개월을 보냈습니다.
태어난지 17개월이돼면 일반적인 아가들은 걷고 뛰고 안고 하지만 우리집 막내공주는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앉지도 서지도 심지어는 네발로 길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할수있는거라곤 잘먹고 잘자고, 손에 쥐어준 장난감을 가지고놀고, 멀리있는 장난감을 잡기위해 두팔만을 이용해 베밀이하는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어제밤 드디어 저희부부를 울리고야 맙니다. 부모라는 이름표를달고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합니다. 평소처럼 밥을먹고 아이들과 거실에서 놀고있는데 세빈이의 행동이 예전과 다릅니다. 발차기를 하는건지 다리를 접었다 폈다만 몇십분째 연신 해대더니 드디어 아이는 제눈으로는 믿지못하게 네발로 정확히 서있+니다.
"여보.. 이리로 잠깐 와봐... 빨리빨리...~~!! 상기된 목소리로 다급히 아내를 부릅니다.
깜짝놀란 아내는 뛰어오고 아이는 그소리에 놀라 다시 엎어져 버립니다.
"세빈이가 네발로 섰어... 지금.."
"정말? 설마..." 아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있고 저는 무엇에 홀린듯 멍하니 있었습니다.
"정말이라니깐.. 혼자 네발로 섰다니깐... 조금만 지켜보고 있어봐.."
집사람은 설겆이하던채로 손에서 거품이 흐르는줄도 모르고 아기옆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아기는 또다시 발을 이리저리 하더니 저희부부 눈앞에서 "악"소리와 함께 네발기기 자세를 해냈습니다.
집사람의 눈에서는 펑펑펑 눈물이 흘렀고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세빈이와 우리집 공주둘을 껴안고 목이메어 어찌할바를 모르는데 큰 아이가 저에게 물어봅니다.
"아빠, 왜그래? 좋아서그래?"
"암.. 좋지 니동생 세빈이가 드디어 네발로 서있지않니?" 우리가족은 다른 가족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소중이 간직하고자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합니다.
신난 아이들은 거실이 무너지게 뛰어놀기 시작하고 집사람과 저는 또다시 주문을 왜웁니다.
"할수있어... 할수 있다고 했지...?"
흠뻑 졎어버린 아이의 내복을 갈아입히며 아이 귀에대고 속삭입니다.
"너무 수고했어 세빈아... 이런 기쁨 안겨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제 진심이 통했는지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맑은 눈으로 저를 처다보며 까르르 웃습니다.
1년넘게 고통이라고만 생각했던 나...
주어진 상황을 헤쳐나갈수 있을지 의심했던 나...
그런 나에게 스스로 물어봅니다
"아이는 저렇게 사력을 다해 살아가는데, 당신은 그저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만 생각했습니까?"
답을 말하기도 챙피한 저는 그저 뼈져린 반성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봅니다.
저를 사랑하고 저만 바라보는 4명의 식구들을 위해 더 열심히 뛰기로 다짐해 봅니다.
오늘아침... 첫째부터 막내까지 그리고 사랑하는 제 아내까지 꽉안아주고 출근하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
퇴근후에 집에가면 가장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모두들 안아주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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